영초언니를 읽다가.
지난 겨울 전 대통령의 추악한 행위가 처음 밝혀진 몹시 추웠던 날, 광화문으로 향했다. 학교 고시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온 사방 벽에는 0월 0일 모이자! 광화문으로!가 적힌 포스터가 즐비했다. 2002년 월드컵 구경을 위해 광장에 선 적은 있어도 집회를 위해 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 마음은 왠지 모를 불안감과 불타는 정의감으로 가득했다. 종로1가에 내려 광화문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처음 느껴본 민주집회의 숨결은 거칠었다. 무력이 동원되지 않았고 오직 많은 이들의 외침과 행진이 길가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무장한 경찰들의 모습은 꽤나 위협적이었고 마음 가득 공포를 갖게 했다.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해 진행된 집회는 꽤 긴 기간을 거치며, 혐의가 확실해지며 민주주의의 축제처럼 밝은 분위기를 갖게 됐지만 초반엔 달랐다. 매우 어두웠고 엄숙했고 우울했다. 그때도 많다고 생각했지만 비교적으로 적은 인원들과 함께 난 길속에 섞여있었다.
그때 나의 마음은 무언가를 해야겠다. 직접 나서야 겠다. 라는 결의 가득한 의지로 차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러다 끌려가면 어떡하나 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집회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주동 단체는 예정된 집회 장소가 아닌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모두에게 외쳤다. 사람들은 함성으로 답했고 광화문 광장에서 경복궁을 향해 행진했다. 그 소리를 들은 무장 경찰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방패로 벽을 만들었다. 그 뒤로는 커다란 경찰 차량들이 서 있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외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그때, 한 늙은 남자가 차 위로 올라서서 확성기를 들고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 집시법 위반 행위를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라.
많은 이들이 야유로 답했고 더 큰 목소리로 경찰들은 물러가라고 외쳐댔다. 또 다시 그는 확성기를 들었다. 더이상 물러나지 않으면 물대포를 쏘겠다.
가슴이 차갑게 어는 것 같았다. 그의 뒤에 있는 큰 차들은 사진에서만 보던 살수차였다. 당시엔 백남기 농민이 서울대 병원에 누워있던 때다.
한 사람의 생명을 너무나도 위험하게 만든 그 물대포. 그걸 나에게, 모두에게 쏘겠다는 엄포.
그것 만큼 나를 얼게 만든 건 없었다.
인간적인 공포와 두려움이 날 잠식했고 사람들도 술렁였다. 혼란스러운 틈에 한 사람이 더 크게 소리쳤다.
-2017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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