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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읽고 느끼고

릴케의 '예술 사물(Kunst-Dingen)'



나는 여지껏 내가 모아온 것들

학창시절 친구들과 나눈 편지, 주고받은 사진, 처음 혼자서 지하철 표를 끊었을때의 기쁨이 담긴 지하철 티켓,

수학여행에서 주워온 돌, 어느 가을 주워 말린 낙엽들..


그런 것들이 내 집에는 한 가득 쌓여있다.

나는 나만의 보물창고에 나름의 질서로 그들을 보관한다.


가끔 마음이 가난할 때는 그 벽장을 열어 그것들을 헤집으며 추억을 담보로 마음을 채운다.

그러한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테마로 해야하나 고민하던 중, 잡동사니라는 말에서 '잡'을 '집'으로 바꿔 집동사니라고 지어야 겠다 생각했다.

다소 부정적인 어감이 있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그보다 더 적합한 표현이 없을 것 같았고

나 또한 딱히 다른 신묘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아 그대로 두었다.


그러던 중, 전영애 교수님의 인터뷰를 읽게 됐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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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세상이 점점 자동화하고 인공지능 같은 것도 발달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인간 소외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A.사람은 점점 불필요해질 텐데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들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에만 혈안인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해야겠지만, 어딘가에 자기 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삶에 사람을 밀착시키는 것이거든요.


릴케가 말하는 것 중에 ‘예술 사물(Kunst-Dingen)’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우리가 사물들을 너무 아무렇게나 휙휙 내버리고 살지는 않나 하는 거지요. 


그럴 경우에는 결국 우리 존재도 다 그렇게 쓰레기처럼 되고 만다는 얘기입니다.


많은 물건이 아니어도 볼펜 하나를 볼 때에도 ‘아, 이건 내가 예전에 이걸로 뭔가를 썼었지’


 혹은 ‘어떤 친구가 준 거지’ 혹은 창문 하나를 볼 때라도 ‘아 내가 저 창가에서 언젠가 어떤 좋은 생각을 했지’ 


이렇게 추억을 묻히고 가치를 부여할 때 그 사물이 다시금 우리 자신을 구원한다는 거예요. 그게 예술 사물 개념입니다.


꼭 무슨 값비싼 예술품이 아니어도, 우리가 물건 하나하나, 


다른 무엇 하나라도 귀하게 바라보고 귀하게 생각할 때 그것은 얼마든지 훌륭한 예술 사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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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얕음을 깨달았다. 

나는 왜 나의 소중한 것들을 타인의 시선에 근거하여 표현하려 했을까?

혹여 누군가 내게 '그걸 왜 보관해?' 혹은 '왜 안버려? 이게 다 뭐야?'라고 말할까 두려워 했던 마음이 없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예술 사물'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

그 표현을 생각해 낸 릴케, 그리고 릴케의 생각을 내게 알려준 전 교수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나의 '예술 사물'작업을 위해 박차를 가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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